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문단 편집) == 생애 == 그는 10세 때 [[성홍열]]로 청각을 잃었다. 도서관 등을 다니며 거의 독학으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했으며, 교사 검정 고시에 합격하여 자기 고향의 중등학교 교사가 됐다. 우주항법(cosmonautics)의 이론적 정립, 발전에서 많은 공헌을 했고, 인간이 다른 행성들의 환경을 재설계할 수 있게 되는 시대, 즉 [[테라포밍|행성의 지구화]]가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찍이 예견했다. 1896년 외계 지능과의 교신에 관한 책을 집필했고, 또 1903년에는 다단계 액체 연료 로켓으로 인간이 지구의 대기 바깥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방법에 관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에펠탑에서 영감을 얻어 [[궤도 엘리베이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기도 했으며 추력방향의 변경이 가능한 로켓엔진, 우주정거장, 연소실의 설계,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한 자세제어, 우주와 출입가능한 에어록의 설계 등 로켓이 발명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현대에도 쓰이는 이론적 배경을 설계했다. 참고로 1903년은 라이트형제가 세계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던 시기다. 인류가 비행을 처음 시작할 때 치올코프스키는 우주여행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고, 현재도 큰 틀에서는 이 이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정 시절에는 그의 연구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공산혁명 이후 중용되어 활발히 연구를 진행시켰다. 이 시기에 다단 로켓, 심지어는 우주정거장의 이론적 가능성까지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소련 공산정권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사후 국장까지 치러주었다. 비록 그가 살아 생전에는 로켓을 만들기는 커녕 실물을 보지도 못했지만, 이러한 이론적 기초를 닦아주었기에 로켓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 등이 주도한 냉전 초기 러시아의 우주과학기술 성과물들(예: 스푸트니크, 가가린)도 치올코프스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생전에 직접 로켓을 만들어 발사할 기회가 없다보니, 이후 최초의 액체 로켓 발사를 성공시킨 [[로버트 고다드]], 이 기술을 발전시켜 잘 써먹은 [[베르너 폰 브라운]], 코롤료프 등 후대의 우주과학 기술자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못한 편. 아들은 자살하고 딸은 반동으로 몰려죽고 본인도 병상에 누워있던 나이 60에 인정받았다. 삶은 좋았다고 보기힘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